[Memoir Part 1] Ep.3 – 우리들만의 의식: 상처를 숨기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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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I 이미지생성 |
아버지가 기운을 차리면 한번씩 커다란 보따리를 짊어지고 집으로 돌아왔다. 방 한가운데 툭 하고 보따리를 던져 놓고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그 안에는 헌 옷들이 가득했다. 눅눅한 곰팡이 냄새가 배어 나왔다.
보따리의 매듭이 풀리는 순간, 언니와 오빠들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달려들어 옷 주머니 속으로 손을 집어넣었다. 주머니를 뒤적이다 보면 꼬깃꼬깃하게 굳어버린 손수건이나 정체 모를 잡동사니들이 툭 튀어나왔다. 가끔 짤그랑, 소리를 내며 동전 한 닢이 바닥으로 굴러떨어지기도 했다. 그럴 때면 그 소리를 따라 우리 여덟 개의 눈동자가 동시에 바닥을 훑었다.
아직 어린 동생 둘을 뺀 네 형제가 둥그렇게 둘러앉으면 의식이 시작됐다. 내 임무는 낡은 옷가지의 솔기를 양손으로 움켜쥐고 팽팽하게 잡아당기는 일이었다.
툭, 투둑, 툭.
날카로운 칼날이 지날 때마다 실밥이 터져 나갔다. 실이 끊길 때마다 해묵은 먼지가 훅 올라와 코를 간지럽혔다. 옷들은 그렇게 한 겹씩 떨어져 나갔다. 등 뒤에서 막내의 칭얼거림이 이어졌고 실 터지는 소리가 그 위로 뒤섞였다.
낱장이 되어 흩어진 옷감들을 아버지와 엄마는 희미한 전등 아래로 끌어와 하나씩 살펴 보았다. 헤진 곳은 피하고 쓸 만한 천을 골라 다림질했다. 재단 테이블 위에서 아버지의 가위가 움직일때 마다 자투리 옷감들이 바닥으로 후두둑 떨어졌고 재봉틀은 쉬지 않고 덜컹거리며 돌아갔다.
엄마는 바닥에 앉아 손바느질로 단추를 달았다. 긴 실을 매단 바늘이 한 번씩 쓰윽, 허공으로 머리를 내밀었다 다시 천 속으로 파고들기를 반복했다. 닳고 바랜 겉면을 안으로 숨기고, 숨어 있던 안감이 겉으로 나오면 헌 옷은 뒤집혀, 빳빳한 새 옷이 되었다.
마지막은 언제나 다림질이었다. 아버지가 입에 물을 머금어 "푸, 푸" 혹은 분무기로 "칙, 칙" 물을 뿌리면, 달궈진 다리미가 지나가는 자리마다 "슈욱" 하는 소리와 함께 하얀 수증기가 폭발하듯 피어올랐다. 그 수증기는 찰나의 순간, 고소하면서도 매캐한 옷감 타는 냄새를 남기고는 차가운 시멘트 벽 사이로 스며들어 사라졌다.
다림질까지 마친 옷들은 차곡차곡 다시 보따리 속에 쌓였다. 아버지는 그 묵직한 뭉치를 어깨에 둘러 메고 다시 시장으로 내려갔다.
우리는 그렇게 옷감의 헤지고 상처 난 곳을 뒤집어 숨긴 채 다시 세상으로 돌려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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