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moir Part 1] Ep.11 – 작은 오빠: 닳아빠진 뒷굽을 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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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I 이미지생성 |
집 안의 공기는 점점 숨막히게 무거워졌다.
작은오빠는 그 공기를 견디지 못하는 사람처럼, 밥만 먹으면 밖으로 나돌았다. 집에 있던 시간보다 밖에 있는 시간이 더 길었다.
어느 날, 나도 오빠를 따라 나섰다. 산으로 올라갔다. 길은 좁았고 길가에 자란 풀들이 내 맨다리를 따갑게 긁었다. 오빠는 주워온 나뭇가지를 꺾어 길 옆 풀숲을 탁탁 후려쳤다. 나는 오빠를 졸졸 따라갔다.
오빠는 풀숲에서 까만 열매를 따서 입에 넣었다.
“이기 까마중이란 기다. 새까만걸 따 무야 더 달다.”
열매가 입안에서 톡 터지며 씨앗이 주르륵 흘러나왔다. 우리는 입술 주변이 까맣게 물든 것도 모른 채 계속 먹었다. 오빠는 풀숲을 헤집어 무언가를 내밀었다.
“이것도 무 봐라.”
쌉싸래한 냄새와 시큼한 맛이 올라왔다. 내가 얼굴을 찌푸리며 삼키자, 오빠가 씩 웃었다.
“엣, 병신. 묵으라고 진짜 묵나?”
우리는 계속 걸었다. 철조망 너머로 무밭이 보였다.
오빠는 잠깐 주위를 훑더니 몸을 낮췄다.
“가만 있어바라.”
손이 철조망 사이로 미끄러졌다.
나는 숨을 멈춘 채 그 뒤에 붙었다. 땅을 더듬던 손끝이 무 하나를 끌어올렸다.
오빠는 껍질을 급히 이빨로 벗겼다. 흙이 입가로 튀었다.
한입 베어 무는 순간, 알싸한 냄새가 퍼졌다.
그때였다.
“거기 누고!”
짧고 날카로운 외침.
오빠 얼굴이 순간 굳었다. 무를 반쯤 문 채 몸을 돌렸다.
“뛰어!”
우리는 동시에 몸을 날렸다.
풀숲이 얼굴을 때렸다. 돌부리가 발바닥을 찔렀다.
뒤에서는 발소리가 따라붙었다.
“야—! 그 서라!”
오빠는 뒤를 한 번도 보지 않았다.
나는 오빠의 팔꿈치 끝만 붙잡고 끌려갔다.
숨이 목까지 차올랐다.
입안에는 아직 무의 씁쓸한 향이 남아 있었다.
계단처럼 꺾인 산길 아래로 굴러 떨어지듯 내려갔다.
소리가 완전히 멀어진 뒤에야 멈췄다.
"식겁했다이"
오빠가 숨을 고르며 히죽 웃었다. 나는 오빠의 엉덩이에 묻은 흙을 툭툭 털어주었다.
오빠는 산길을 내려오며 계속 노래를 지어 불렀다. 밤에도 천장을 보며 제멋대로 흥얼 거렸다. 그러다 어른들에게 한소리 듣고나서 잠이들곤했다.
집으로 돌아온 오빠는 방으로 가지 않았다. 부엌문 옆에 놓인 깍두기 항아리 앞에 쭈그려 앉았다. 뚜껑을 열고 손을 넣어 몇 조각을 집어 먹었다..
“야, 이노무 자식!”
아버지의 손바닥이 날아왔다. 오빠는 머리를 감싸고 웅크렸다. 항아리 옆에 주저앉아 눈을 비비며 울었다. 얼굴에는 검은 눈물 자국이 번졌다.
엄마는 내 입가에 묻은 퍼런 풀 자국을 보고 물었다.
“니는 풀 먹었나? 니가 소가 말이가 와 풀을 먹고 다니노?”
나는 작은소리로 ‘나는 말띠라요’ 라고 대답했다. 옆에 있던 큰오빠가 웃음을 터뜨렸다.
학교에서도 집에서도, 내 작은 목소리는 점점 더 안으로 들어갔다.
그러나 작은오빠는 늘 “저요! 저요!” 손을 번쩍 들었다. 선생님 질문에는 엉뚱한 답을 내놓고도 웃었다.
등록금 납기 기한이 지나고, 마지막 까지 못낸 사람은 우리반에서 나 혼자 였다. 선생님은 막대기로 손바닥을 때렸다. 오빠도 같은 벌을 받았다. 우리는 빨갛게 부은 손바닥을 부비며 집으로 돌아왔다.
등록금 이야기를 꺼내자 아버지가 소리쳤다.
“당장 없는걸 어디서 구해다 달라고 이래 보채쌓노!”
아버지의 손이 휙 올라오자 우리는 몸을 움추렸다. 다음 순간 손바닥이 오빠 쪽으로도 떨어졌다.
다음 날 아침, 우리는 말없이 집을 나섰다. 교문 앞에 서자 우리는 한참을 서성였다. 가방을 멘 아이들이 우리 곁을 스쳐 지나갔다.
오빠의 충혈된 눈이 그 뒷모습을 쫓았다. 주먹 쥔 손에 힘이 들어갔다.
“그래도 가야지.”
오빠는 먼저 걸음을 뗐다. 나는 오빠의 닳아빠진 운동화 뒤꿈치를 바라보며, 그 뒷모습을 따라 학교 안으로 들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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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들은 1970년대 바다 건너편 작은 집에서 자라던 어린 시절을 돌아보며 쓰는 이야기입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처음부터 이어서 읽기:
[Memoir Part 1] Ep.1 회색 공장: 낮은 천장 아래 그려진 첫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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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moir Part 1] Ep.10 – 검은 라디오와 노란 전구: 흘러들던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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