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moir Part 1] Ep.12 – 불길 속 미소: 이어지지 못했던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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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인형들은 좁고 눅눅한 방 안에서 유일하게 반짝였다.
나는 그 것들을 한 줄로 세워 놓고 인형들의 미소를 오랫동안 바라보았다."
| AI 이미지 생성 |
수업이 끝난 뒤, 운동장은 비어 있었다.
나는 가방을 들고 교문 쪽으로 걸었다.
“야.”
뒤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같은 반 아이였다.
“우리 집 갈래? 아무도 없다.”
나는 잠깐 망설이다 고개를 끄덕였다.
집은 조용했다. 부엌을 지나 방으로 들어갔다. 어둑한 방 안에 무거운 정적이 내려앉아 있었다. 한쪽 벽면에 커다란 장롱 하나가 서 있었다. 친구는 장롱 문을 열고 고구마가 담긴 소쿠리를 꺼내 내밀었다.
“같이 묵자. 우리 할매가 내 학교 갔다오믄 무라 카더라.”
장롱 안 이불 사이에서 꺼낸 고구마는 아직 온기를 머금고 있었다. 친구는 자기 것보다 조금 더 통통한 고구마를 슬쩍 내 쪽으로 밀어 주었다. 우리는 방바닥에 나란히 엎드려 두 발을 공중에 세운 채 까딱거리며 고구마를 먹었다.
친구가 손때 묻은 플라스틱 인형을 꺼내왔다. 매끄럽고 단단한 플라스틱의 감촉과 까칠한 금발 머리카락이 내 손바닥에 닿았다. 나는 인형의 얼굴을 가만히 바라보며, 둥근 어깨와 가느다란 팔을 손가락 끝으로 만져 보았다. 그 방 안에서 우리는 인형 옷을 갈아입히며 소곤거렸다. 그 시간은 우리 둘만의 또 다른 세상이었다. 나는 바닥에 놓인 인형을 한 번 더 바라본 뒤 친구의 집을 나섰다.
집으로 돌아온 뒤에도 그 잔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나는 바닥에 배를 깔고 종이 위에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긴 머리, 역삼각형 입술, 바닥까지 퍼지는 드레스. 예쁜 공주님들이었다.
언니의 색연필을 몰래 꺼내 색을 입혔다. 머리카락은 노란색으로, 드레스는 연분홍색으로 촘촘히 채워 넣었다. 그림이 완성되자, 숨을 죽이고 가위질을 시작했다. 오려낸 종이 인형들에게 우리 반에서 가장 예쁜 옷을 입고 오던 아이들의 이름을 붙여 주었다.
그 인형들은 좁고 눅눅한 방 안에서 유일하게 반짝였다. 나는 그 것들을 한 줄로 세워 놓고 인형들의 미소를 오랫동안 바라보았다.
그때였다. 머리 위로 아버지의 거친 손이 내려왔다. 바닥에 놓인 종이 인형들을 한꺼번에 낚아챘다.
"아고, 밤에 귀신 나오구로… 와 이런 걸 그리 쌌노! 공부는 안 하고!”
아버지는 그것들을 구겨 아궁이 속 연탄불 위로 던져 버렸다. 구겨진 종이 인형들이 불꽃 속에서 몸을 뒤틀었다. 연분홍 드레스가 타오르다, 까만 재로 가라앉았다.
나는 아버지의 등 뒤에서 숨을 죽인 채 발을 동동 굴렀다. 울음이 올라왔다. 아버지가 돌아보았다. 나는 그울음을 목구멍 깊숙이 꾹 눌러 삼켰다. 쏟아지는 눈물을 손등으로 닦아냈다.
그날 이후, 나의 울음은 터져나오지 못하고 늘 목 안으로 삼켜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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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들은 1970년대 바다 건너편 작은 집에서 자라던 어린 시절을 돌아보며 쓰는 이야기입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처음부터 이어서 읽기:
[Memoir Part 1] Ep.1 회색 공장: 낮은 천장 아래 그려진 첫 지도
이전편 읽기:
[Memoir Part 1] Ep.11 – 작은 오빠: 닳아빠진 뒷굽을 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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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moir Part 1] Ep.13 – 빨간 구두: 손에 쥐지 못했던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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